용화사
 
작성일 : 12-05-19 13:15
화엄경(제8-16장)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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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

문수보살은 불법의 깊은 의미를 체득하고 있는 현수(賢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나는 이미 보살의 청정한 행에 관해서 설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그대는 보살의 광대무 변한 공덕의 의미를 설하여 주시옵소서."
현수보살이 대답하였다.


"불자여, 잘 들으시오. 보살의 공덕은 광대무변하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나는 자신의 힘에 의하여 그 중 일부의 공덕을 설하고자 합니다. 내가 설하는 것은 마치 큰 바다 속의 한 방울 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처음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菩堤心]을 낸 보살은 오로지 꾸준하게 깨달음을 구하여 동요하지 않 습니다.
만약 그 일념(一念)의 공덕을 여래가 설한다 해도 그 일념의 공덕을 설하여 마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보살이 여러 가지 행을 닦은 공덕에 대해서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세계의 모든 부처 님이 설한다고 하여도 다 설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나는 공덕의 일부를 설하지만 그것은 마치 새 가 허공을 품는 것과 같고 또 대지(大地)의 한 티끌과 같습니다.


보살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리고 스님[三寶]에 대한 깊고 청정한 신심을 갖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킵 니다.
감각에 따르는 욕망이나 재물을 구하지 않고 세간의 명예를 바라지 아니하며, 중생의 고뇌를 없 게 하여 맹세코 이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염원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킵니다.
부처님의 바른 진리를 배워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자 생각하고 모든 지혜를 닦기 때문에 보리심 을 일으킵니다.


깊고 청정한 신심은 견고하여 부서지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정법과 스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킵니다.
신심은 불도의 근본으로서 모든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그것은 모든 선법(善法)을 증진하여 모든 의혹을 없애고 위없는 불도(佛道)를 열어 줍니다.
신심은 때가 없고 흐리지 않으며 성내는 마음을 없애고 근신하는 근본입니다.
신심은 최고의 보배창고[寶庫]이며, 청정한 손이 되어 온갖 행을 받아들입니다.
신심은 모든 집착을 떠나고 깊고 오묘한 불법을 깨달으며 모든 선을 행하고 드디어는 반드시 부 처님의 나라에 이를 것입니다.


신심의 힘은 견고하여 부서지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악을 영구히 제거하고 일체의 마경(魔境)을 넘어서 위없는 해탈의 길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진실한 불법을 믿는다면 항상 그것을 듣고자 원하며 권태를 느끼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만 약 권태를 느끼는 일이 없다면 마침내는 불가사의한 불법을 깨달을 것입니다.
만약 신심이 견고하여 동요하는 일이 없으면 몸과 마음이 함께 밝고 모든 것이 청정하게 될 것입 니다.
모든 것이 청정하게 되면 모든 악우(惡友)를 떠나서 선우(善友)와 가까이 지낼 것입니다.
선우와 가까이 하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공덕을 닦을 것입니다. 공덕을 닦으면 온갖 인과(因果) 를 배우고 그 도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그 도리를 깨달으면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지켜주며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마음[菩堤心]을 일으 킬 것입니다.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키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태어나 일체의 집착을 떠날 것입니다.일체의 집착을 떠날 수 있으면 깊고 청정한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며 모든 보살행을 실천하고 대승 (大乘)의 법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대승의 법을 갖추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염불삼매(念佛三昧)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염불삼매를 체득하면 항상 시방의 부처님을 볼 수 있으며 부처님의 세계에 항상 안주(安住)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세계에 안주하게 되면 스스로 불법을 체득하게 되어 한없는 변재(辯才)를 갖고 무량한 불법을 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량한 불법을 설할 수 있으면 모든 중생을 해탈시킬 수가 있고 대비심(大悲心)은 확립될 것입니 다.
대비심이 확립되면 깊고 깊은 불법을 기뻐하고 교만심과 게으름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교만심과 게으름을 떠날 수 있으면 고뇌의 생사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근심하는 일이 없고 노력하 고 정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정진할 수가 있으면 온갖 신통을 얻고 중생의 생활을 알 것입니다. 중생의 생활을 알면 중생에 대하여 법을 설하고 재물을 보시하며 사랑스러운 말로써 중생에게 기 쁨을 주며 선행으로써 이끌며 함께 활동할 것이고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을 베풀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을 베풀게 되면 스스로는 위없는 진리에 안주하고 악마로 인하여 정복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악마로 인하여 정복되는 일이 없으면 부동지(不動地)에 도달하여 불생불멸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생불멸의 진리를 체득하면 이윽고 성불하는 것이 약속되고 모든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을 깨닫 고 모든 부처님이 항상 지켜줄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이 지키게 되면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이 몸에 넘치고 그 모습은 광명으로 빛날 것입 니다. 광명을 받아 빛나면 그 광명으로부터 무량한 연꽃이 나타나 그 연꽃 하나하나의 꽃잎에 무량한 부처님이 나타나고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하게 할 것입니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무량한 자재력으로 적절한 곳에 모습을 나타내고, 일념 사이에 모든 중 생의 마음을 낱낱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념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알면 고뇌의 생사는 영원히 종식되고 모든 번뇌는 적멸하며 법신의 지혜가 갖추어져 모든 사물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물의 실상을 깨달으면 모든 자재력을 낱낱이 실현하여 뛰어난 해탈에 이르고 시방의 모든 보처(補處)로부터 성불의 약속을 받을 수 있으며, 감로의 법수(法水)가 이마에 부어질 것입니다. 감로의 법수가 이마에 부어지면 법신은 허공에 충만하고 시방세계에 안주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보살의 큰 실천에 의하여 정법은 항상 안주하며 영원히 불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 힘 은 대해와 같이 광대하고 또 금강과 같이 견고합니다.

또 보살은 일념 사이에 시방세계에 나타나 시방세계에서 생각생각마다 불도를 실현하여 열반(涅 槃)에 듭니다. 혹은 남녀의 모습으로, 혹은 천신이나 인간, 용(龍), 신(神)의 모습에 의하여 무량한 활동을 하 고, 온갖 음성을 내어 불법을 설합니다. 이와 같이 보살이 시방세계에 나타나 가득 차는 것은 해인삼매(海印三昧)에 의한 것입니다. 또 보살은 일체의 모든 보살을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스스로 발한 광명은 불가사의 하며,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무량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에 자유자재하여 불가사의한 것은 화엄삼매(華嚴三昧)의 힘 때문입니다.

또 보살은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자 생각하였을 때 무량한 삼매가 생기는 것입니다. 온갖 춤과 음악과 노래와 시(詩)로서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그 음성이 시방세계에 충만 하여도 이것은 모두가 보살의 손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보살은 중생을 편안하게 하는 삼매에 들어서 광명을 발하고 이 광명에 의하여 중생을 해탈시 킵니다. 예를 들면 '선현(善現)'이라는 광명은 중생에게 한없이 좋은 과보를 받고 드디어 위없는 진리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빛에 의하여 불, 법, 승의 삼보가 나타나고 탑과 불상이 세워집니다. 또 '제애(除愛)'라고 하는 광명은 모든 중생을 눈뜨게 하고, 온갖 애욕을 버리고 해탈의 감로수 를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그때, 해탈의 감로의 비가 모든 중생 위에 뿌려질 것입니다.

또 '환희'라고 하는 광명 역시 모든 중생을 눈뜨게 하고, 기쁨에 가득 차서 깨달음을 구하게 하 며, 위없는 진리의 보배를 원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대자비상이 건립되고 온갖 공덕은 찬 탄을 받고 그로 인하여 환희의 광명은 완성됩니다.


또 '애락(愛樂)'이라고 하는 광명 역시 모든 중생을 눈뜨게 하고, 마음은 항상 모든 여래와 위없 는 불법과 청정한 승단(僧團)을 기쁘게 합니다. 항상 시방의 모든 부처님 앞에 나와서 위없는 불법 을 이해하게 되며 중생을 교화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방편을 개발하며 그로 인하여 애락의 광명이 완성됩니다.
또 '혜등(慧燈)'이라고 하는 광명 역시 모든 중생을 눈뜨게 하는데, 모든 사물은 공적(空寂)하여 생(生)하지도 않고 멸(滅)하지도 않으며,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해 탈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아지랑이나 물에 비친 달 그림자, 또는 꼭두각시나 꿈, 혹은 거울 속의 영상과 같이 모든 사물은 실재가 없으며 모두가 공적함을 알게 됩니다. 이 때문에 혜등의 광명은 완성됩니다. 또 '무간'이라고 하는 광명은 모든 중생으로부터 탐심을 없애고 재보(財寶)는 영원한 것이 아님 을 알게 하여, 모든 집착을 떠나게 합니다. 억제할 수 없는 탐욕을 잘 통제하고 재보는 꿈과 같고 뜬구름과 같다고 깨닫게 하여 항상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보시하게 합니다. 이로 인하여 무간 의 광명은 완성됩니다.

또 '인장엄(忍莊嚴)'이라고 하는 광명은 분노한 사람을 눈뜨게 하여 분노를 버리고 항상 온화한 마음으로 인욕하는 부처님의 법을 원하게 합니다. 성품이 포악하여 참지 못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일을 참게 하고, 불도를 구하며, 항상 인욕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칭찬하게 하여, 그로 인하여 인장엄의 광명은 완성됩니다.

또 '적정(寂靜)'이라고 하는 광명은 마음이 혼란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 음의 삼독을 떠나서 깊고 깊은 삼매에 안주하게 합니다. 악인이나 착하지 못한 일에서 멀어지게 하 고, 거짓과 옳지 않은 말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좌선하는 것을 기뻐하게 하며, 그 때문에 적정의 광명이 완성됩니다.

또 '견불(見佛)'이라고 하는 광명은 죽음에 이른 사람을 눈뜨게 하여, 염불삼매의 힘으로 반드시 부처님을 보게 하며, 목숨이 다할 때에는 부처님 앞에 태어나게 합니다. 그 임종을 보고서는 염불 을 권하고 불상을 예배하게 하며, 그 때문에 견불의 광명은 완성됩니다.


또 '법청정(法淸淨)'이라고 하는 광명이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털구멍 안에서 무량한 모든 부처 님은 저마다 불가사의한 불법을 설하고 있으며, 중생을 환희하게 합니다. 즉 인연에 의하여 생기는 것은 실체가 아니며, 여래의 법신 또한 무상한 신체가 아닌 부동(不動)으로서 영원하며 그 영원함 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설합니다. 이 때문에 법청정의 광명이 완성됩니다.

이와 같은 광명은 저마다 무량하고 무변하며 또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낱낱이 보살의 털 구멍에서 나왔고 하나하나의 털구멍에서 나온 광명은 무변무량하며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모든 털구멍에서 나온 광명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보살의 삼매에 있어서의 자재력 때문입 니다.
만약 무량한 공덕을 닦고, 무수한 부처님을 공양하고, 마음이 항상 위없는 불도를 구하는 자는 이와 같은 광명을 만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님이 해를 볼 수 없는 것은 해가 지상에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눈을 가진 자만이 모든 것을 보고 일에 따라서 성과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광명도 그와 같아서 보는 자도 있고 보지 못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릇된 소견을 가진 사람은 보 지 못하나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능히 볼 수 있습니다.

또 보살은 시방의 세계에 인연이 있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오고 가며 출입하여 중생을 구제하고, 때로는 삼매에 들고, 때로는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혹은 동방에서 삼매에 들고 서방에서 삼매로부터 일어나며, 혹은 서방에서 삼매에 들고 동방에서 삼매로부터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삼매에 출입하여 시방에 충만하는 것은 보살에게 있는 삼매의 자재력 때문입니다. 시각(視覺)으로써 삼매에 들고 색채(色彩)로써 삼매에서 일어서며, 색채의 불가사의함을 봅니다. 색채로써 삼매에 들고, 시각으로써 삼매에서 일어서도 마음은 혼란하지 않습니다. 시각은 생하는 일도 없고, 자성도 없으며, 오직 적멸할 뿐이라고 설합니다.


청각(聽覺)으로써 삼매에 들고 음성으로써 삼매에서 일어서며, 온갖 음성을 듣고 판별합니다. 음 성으로써 삼매에 들고 청각으로써 삼매에서 일어서도 마음은 혼란하지 않습니다. 청각은 생하는 일 도 없으며 자성도 없고, 오직 적멸할 뿐이라고 설합니다.
이와 같이 취각, 미각, 촉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써 삼매에 들고 대상으로써 삼매에서 일어서며, 온갖 대상을 식별합니다. 대상으로써 삼 매에 들고 마음으로써 삼매에서 일어서도 마음은 생하는 일도 없고 자성(自性)도 없으며 오직 적멸 하다고 설합니다.
소년의 몸으로 삼매에 들고 장년의 몸으로 삼매에서 일어서며, 장년의 몸으로 삼매에 들고 노년 의 몸으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노년의 몸으로 삼매에 들고 선한 여인으로써 삼매에서 일어서며, 선한 여인으로서 삼매에 들고 선한 남자로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선한 남자로서 삼매에 들고 비구니의 몸으로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비구니의 몸으로 삼매에 들 고 비구의 몸을 가지고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비구의 몸으로 삼매에 들고 성문(聲聞)의 몸으로 삼매에서 일어서며, 성문의 몸으로 삼매에 들 고, 연각(緣覺)의 몸으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연각의 몸으로 삼매에 들고 여래의 몸으로 삼매에서 일어서며, 여래의 몸으로 삼매에 들고 모든 하늘[天神]의 몸으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모든 하늘의 몸으로 삼매에 들고 모든 귀신의 몸으로서 삼매에서 일어서며, 모든 귀신의 몸으로 서 삼매에 들고 하나의 털구멍으로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하나의 털구멍으로서 삼매에 들고 모든 털구멍으로서 삼매에서 일어서며, 모든 털구멍으로서 삼 매에 들고, 하나의 털끝으로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하나의 털끝으로서 삼매에 들고, 모든 털끝으로서 삼매에서 일어서며, 모든 털끝으로서 삼매에 들고, 하나의 작은 티끌로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하나의 작은 티끌로서 삼매에 들고, 모든 작은 티끌로서 삼매에서 일어서며 모든 작은 티끌로서 삼매에 들고, 모든 부처님의 광명으로서 삼매에서 일어섭니다.


모든 부처님의 광명으로서 삼매에 들고, 큰 바다의 물로서 삼매에서 일어서며, 큰 바다의 물로서 삼매에 들고 허공으로서 삼매로부터 일어섭니다.
이같이 무량한 공덕이 있는 사람은 그 삼매가 자유자재하여 불가사의합니다. 설사 시방의 모든 여래가 그 삼매를 설한다 하여도 모두 설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이를 찬탄 하며 중생의 과거는 불가사의하다고 합니다.

그때 자연히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체의 오욕은 모두가 무상하다. 허망하고 물거품과 같으며 꼭두각시나 아지랑이와 같으며 물 속에 뜬 달과 같고 뜬 구름과 같다.
오욕은 모든 공덕을 장애하는 것이다. 그대는 항상 진실하고 청정한 보살행을 구하라.' 모든 세계의 중생 가운데 성문(聲聞)의 길을 바라고 구하고자 하는 자는 적으며, 연각(緣覺)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보다 적으며, 대승(大乘)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더욱 적습니다. 그러나 대승을 구하는 것은 또 쉬우나 대승의 법을 믿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물며 이 법을 잘 수 지(受持)하고 바르게 기억하며 가르침 그대로 행하고 진실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렵습니다. 삼천대천세계를 머리에 이고 일 겁(一劫)사이를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대승의 법을 믿는 것은 오히려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세계의 중생이 일 겁 동안 공양한다 해도 그 공덕은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승의 법을 믿는 공덕은 보다 뛰어납니다. 손바닥 안에 열 개의 부처님 나라를 갖고 일 겁 사이 허공에 머무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다 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승법을 믿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열 개의 부처님 나라에 사는 중생에게 일 겁 동안을 공양한다 해도 그 공덕은 그다지 뛰어난 것 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승의 법을 믿는 공덕은 보다 뒤어납니다. 하물며 이 경전을 수 지하고 있는 공덕은 더욱더 뛰어날 것입니다."

현수보살이 이 장(章)을 설하여 마쳤을 때 시방의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모든 악마의 궁전은 흡사 칠흑과 같이 어두웠으나 부처님의 광명은 시방을 두루 비추어 모든 악도를 낱낱이 제 거하였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모두가 현수보살 앞에 나타나 저마다 오른손을 뻗쳐서 그 머리를 어루만졌 다. 그 때문에 보살의 자비는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된 빛을 발했다. 모든 여래는 보살의 머리를 어루만진 다음에 칭찬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도다. 진실한 불자여, 그대는 대승의 법을 분명하게 설하여 마치었다. 나는 그대와 함께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리라."

 

제 9장 불승수미정품(佛昇須彌頂品)

세존께서는 위신력으로써 이 깨달음의 자리를 떠나서 수미산(須彌山)의 정상(頂上)에 올라 도리 천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으로 향하셨다.
그때 제석천은 저 멀리로부터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많은 보배를 뿌린 자리를 만들어 그 위에 또 보배로 된 자리를 몇 겹으로 폈다. 그리고 제석천은 부처님 앞에 합장예배하고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무쪼록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 궁전에 머물러 주시옵소 서."
세존께서는 이 원을 받아들여 궁전으로 올라갔다. 그때 제석천의 궁전에서 흘러 나오는 무량한 음악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인하여 조용해졌다. 제석천은 과거세에 부처님을 모시고 진리를 지키 는 구도자의 고행을 닦던 일을 생각해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섭불(迦葉佛)은 대자비를 갖추어 복덕이 원만합니다. 그 부처님은 전에 여기에 오신 적이 있 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땅은 보다 더 축복되었습니다. 구나함모니불(苟那含牟尼佛)의 지혜는 장애가 없고 복덕이 원만합니다. 그 부처님도 전에 이곳에 오셨습니다. 때문에 이 땅은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구류손불(拘留孫佛)의 몸은 흡사 황금의 산과 같고 복덕이 원만합니다. 그 부처님도 전에 이곳에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땅은 보다 축복되고 있습니다.


비사부불(毘舍浮佛)은 탐욕과 분노와 우치의 삼독을 떠나서 복덕이 원만합니다. 그 부처님도 전 에 이곳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땅은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시기불(尸棄佛)은 항상 적연(寂然)하고 복덕이 원만합니다. 그 부처님도 전에 이곳에 오신 일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땅은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비바시불(毘婆尸佛)은 흡사 보름달과 같으며 복덕이 원만합니다. 그 부처님도 전에 이곳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땅은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연등불(燃燈佛)은 세계를 밝게 비추며 복덕이 원만합니다. 그 부처님도 전에 이곳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땅은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석천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십만의 제석천도 또한 저마다 전에 수행하였던 곳에 있는 과거세의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사자좌에 올라 결가부좌하였다. 그러자 궁전은 곧 순식간에 넓혀지고 도리천도 같 은 넓이가 되었다. 십만의 궁전도 또한 그와 같이 넓혀졌다.

제 10장 보살운집묘승전상설게품(菩薩雲集妙勝殿上說偈品)

그때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보살들은 저마다 수많은 보살들을 이끌고 부처님을 찾아와 합장하고 예배하였다. 이 세계의 정상 수미산 위에는 보살들이 운집하여 흡사 시방세계와 같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두 발의 발가락에서 아름답고 무수한 광명을 발하여 시방세계의 궁전을 비추었 다. 그리하여 거기에 모인 보살들의 광명 속에 떠올랐다.

그때 법혜(法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게송(偈頌)을 읊었다.
"일체의 모든 부처님은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의 묘승전(竗勝殿)에 나타나셨습니다. 부처님 을 받드는 이 무수한 보살들은 시방으로부터 찾아와 결가부좌하였습니다." 그리고 법혜보살은 대중을 향하여 말하였다.

"모든 보살들이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합니다. 여래의 위신력에 의하여 모든 세계, 모든 사람 앞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부처님께서 제석천의 묘승전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있습 니다. 시방세계의 묘승전도 또한 같습니다.

이는 한결같이 여래의 자재력에 의한 것입니다. 모든 세계 안에서 뜻을 세우고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자는 먼저 청정한 서원을 일으켜 보살행 을 닦아야 합니다.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을 수행하고, 가르침을 펴는 데에도 장애가 없으 며, 시방을 비추어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제거하고 있으니 그 힘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 다."

또한 일체혜(一切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다음과 같 이 찬탄하였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뵈올 수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바른 가 르침 안에서도 아직도 진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망상에 얽매이고 생사에 윤회하며 마음의 눈은 감 겨서 부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 모든 사물을 관찰하지만 아직도 실상을 볼 수 없습니다. 일체의 모든 사물은 생멸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관념에 얽매여 있습니다.

만약 일체의 사물은 생하는 일이 없고 멸하는 일도 없음을 깨달을 수가 있으면 모든 부처님은 항 상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본래가 집착도 없고, 변하지 않는 주체[我見]가 있는 것도 아니며, 공적(空寂)하여 진실 그 자체까지도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본래 공하여 헤아려 알 수가 없습니다. 일체의 모든 사물을 헤아려 알 수가 없다고 깨닫는 자는 어떠한 번뇌 속에 있어서도 그 마음이 오염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공덕혜(功德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시방세게를 남김없이 관찰한 후 게송을 읊 었다. "모든 것은 꼭두각시와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에 집착 하여 항상 생사에 윤회하고 있습니다.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여 자기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또한 도리에 어긋난 견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공함을 보지 못하고 항상 무량한 고뇌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 르침에 대한 청정한 눈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체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눈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진실한 부처님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을 보고서 자기의 마음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모든 것의 진실을 깨달을 수가 있을 것 입니다. 부처님은 실로 이 진실한 가르침으로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또한 선혜(善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게송을 읊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한량없는 부처님들은 해심(害心)을 떠나 스스로 생사를 넘고, 해탈하여 중생들도 눈을 뜨게 합니다.

세간의 모든 모습은 모두가 공하여 실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모든 것에는 그 자체의 본성은 없으며, 이 본성이 없는 것으로 성 품을 삼아 그 성질이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만약 이러한 모양을 설한다 하여도 설하여 다 마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혜 있는 자는 이것 을 다함이 없다고 설하지만, 그것 또한 다 설한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의 본성이 허공과 같아 다함이 없기 때문에 불가사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진혜(眞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어 시방세계를 납김없이 관찰하고 게송을 읊었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모든 고뇌를 받고 생사 속에 유전하고 있는 것은 부처님의 이름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부처님은 인연에 의하여 생긴 것이 아닙니다. 과거, 미래의 부처님 도 또한 그러합니다. 일체의 모든 것은 차별을 초월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참 성품입니 다.

만약 이와 같이 모든 것의 깊은 뜻을 관찰하면 무량한 부처님의 영원불멸한 진실의 모습 그 자체 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알며,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지 아니하다고 아 는 이것이 최후의 가장 뛰어난 깨달음이며, 그것을 부처님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이와 같이 닦았으면서도 한 가지의 법도 얻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에 의하여 많 음을 알고, 많음에 의하여 하나를 압니다. 또 모든 것은 의지하는 곳이 없이 다만 인연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활동의 주체도, 활동 그 자체도 함께 얻는 바가 없으며, 이것을 구하여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 얻을 수 없는 것이야말로 모든 부처님이 의지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는 의지하는 바가 따로 없고 깨달은 이에게는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많은 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게송을 읊었다.

 

제 11장 보살십주품(菩薩十住品)

그때 법혜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보살의 무량한 방편의 삼매에 들었다. 법혜보살이 삼 매에 들자, 시방의 무수한 부처님 나라와 그 밖의 무수한 부처님들이 삼매의 힘으로 나타났다. 이 부처님들의 이름은 모두가 법혜(法慧)였다.

그때 모든 부처님은 법혜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능히 보살의 무량한 방편의 삼매에 들었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 삼매에 든 것은 시방의 무수한 부처님이 그대에게 신통력을 주었기 때문이 다. 또 일체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서원의 힘과 선근력(善根力)에 의한 것이다. 또 그대로 하여금 넓은 가르침을 설하게 하고자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 가르침의 지혜를 키우고 진리의 세계를 열며, 중생의 세계를 분별하게 하고 장애를 없게 하여 장애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선남자여, 참으로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오묘한 진리[法]을 설하여야 한다."
그때 모든 부처님은 저마다 오른쪽 팔을 뻗쳐 법혜보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법혜보살은 삼매로 부터 일어나 모든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불자들이여, 보살의 본성은 광대하고 깊어 흡사 허공과 같습니다. 일체의 보살은 과거, 현 재, 미래의 모든 부처의 본성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보살의 십주(十住)의 행(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것입 니다.

무엇을 십주(十住)라고 합니까. 그것은 초발심주(初發心住), 치지주(治地住), 수행주(修行住), 생귀주(生貴住),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정심주(正心住), 불퇴주(不退住), 동진주(童眞住), 법왕 자주(法王子住), 관정주(灌頂住)를 말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수행이 머무는 열 가지 장소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첫째 보살이 머무는 초발심주(初發心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부처님의 위덕을 잘 드러내는 원만한 상호를 지니신 부처님을 보며, 혹은 부처님의 신 통을 보고, 설법을 들으며, 또 일체 중생의 무량한 고통을 보고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켜 일 체지(一切智)를 구하되 결코 퇴보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은 초발심에 의하여 열 가지 힘을 얻습니다. 예를 들면,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을 분별하 는 지혜이며, 업보로 인하여 주어진 생의 번뇌와 청정을 아는 지혜이며, 과거의 생애를 아는 지혜 이며,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지혜이며, 모든 번뇌와 그 남은 악업이 없어지는 것을 아는 지혜 등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이 보살들은 열 가지 덕목을 배워야 합니다.
즉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모든 보살을 찬탄하며, 중생의 마음을 지키며, 현명한 자를 가 까이하며,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닦으며, 모든 부처님의 앞에 태 어난 것을 찬탄하며, 방편에 의하여 삼매를 익히며, 생사의 윤회를 떠나기를 바라며, 괴로움에 젖 은 중생을 위하여 스스로 귀의하는 곳이 되도록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에 의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보다 더 견고하게 할 수 있으며, 위없는 부처 님의 가르침을 완성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리를 들을 수 있으면 스스로 이것을 듣고 이 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에 의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보다 더 견고하게 할 수 있으며, 위없는 부처 님의 가르침을 완성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리를 들을 수 있으면 스스로 이것을 듣고 이 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두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치지주(治址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일체의 중생에 대하여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 열 가지 마음이란 즉, 대비심 (大悲心)과 대자심(大慈心), 안락심(安樂心), 안주심(安住心), 연민심(憐愍心), 섭수심(攝受心), 수호심(受護心), 동기심(同己心), 사심(師心), 여래심(如來心)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이 보살들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자주 가르침을 듣기를 원하며, 탐욕을 떠나 삼매를 닦으며, 선지식을 가까이하여야 합니다. 또 그 가르침에 따라서 말할 때에는 적절한 때를 선택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지 않으며, 진 리의 깊은 뜻을 깨닫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요달하여 진리 그대로를 행하며, 마음의 어리석음을 떠 나 움직이지 않는 마음에 안주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하여야만 일체 중생에 대하여 대자비를 증진하고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들을 수 있는 불법이 있다면 스스로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세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수행주(修行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모든 존재를 관찰하는 열 가지 길을 닦습니다. 즉 모든 존재는 무상(無常)하며, 괴로 움[苦]이며, 공(空)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체는 없다는[無我] 것과 모든 존재는 즐거워할 것 이 아니며, 모이고 흩어지는 일도 없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모든 사물은 허망하 고, 거기에는 견고함이 없다고 관찰합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다음과 같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모든 중생의 세계, 진리의 세계, 땅[址]의 세계, 물[水], 불[火], 바람[風]의 세계, 욕망의 세계, 형상이 있는 세계, 형상이 없는 세계를 알도록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하여야만 보살은 모든 사물에 대해서 맑고 밝은 지혜를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들을 수 있는 진리가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 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네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생귀주(生貴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거룩한 가르침 안에서 태어나 열 가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합니다. 즉 부처님을 믿 고, 진리를 실현하며, 선정(禪定)에 들고, 또 중생과 부처님의 나라와 세계와 모든 업과 과보와 생 사의 열반 등을 아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과거, 현재, 미래의 가르침을 수행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진리를 몸에 갖추고,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것을 관찰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밝게 요달하고 마음의 평등을 얻어야 하기 때문 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진리가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해서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다섯 번째로 보살의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열 가지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여야 합니다. 즉, 보살이 수행하는 공덕으로써 일체 중생을 구호하고, 일체 중생에게 연민하며, 일체 중생의 인격을 완성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재난을 떠나게 하고, 일체 중생을 생사의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일체 중생을 기쁘게 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극복하게 하며, 모두가 열 반을 얻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중생은 무변하고 무량하며, 무수하고 불가사의하며, 여러 가지 형태를 갖고 있으며, 무상하고 자재하지 못하며, 진실하지 못하며, 의지 할 곳이 없고, 자성(自性)이 없다고 하는 것을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자기의 마 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불법이 있으면 이를 듣고 이해하고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여섯 번째로 보살의 바른 믿음[正心住]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열 가지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결정하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決定心]을 얻습니다. 만약 부처님을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진리를 찬탄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움직이 지 않습니다. 보살을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 지 않습니다. 보살의 행하는 진리를 찬탄하고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 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생의 수는 유한하거나 혹은 무한하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 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생은 더럽혀져 있다든가 혹은 더럽혀져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생은 구원하기 쉽다. 혹은 구원하기 어렵다고 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리의 세계는 유한하다거나 혹은 무한하다고 하여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 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계는 생성(生成)되어 있거나 혹은 파괴되어가고 있다고 하여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계는 실재한다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 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습이 없는 것이며, 본성이 없고, 수행할 수도 없으며, 실체가 아니며, 진실하지도 않고, 자성도 없으며, 흡사 허공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은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일단 얻은 공덕을 다시는 잃지 않는 경지[不退轉]에서 불생불멸하는 절대적인 진리를 깨달은 평온함[無生法忍]을 체득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불법은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할 것이지 결코 타인을 의지하여 깨닫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 다.

불자들이여, 일곱 번째로, 깨달음을 확약받은 보살이 머무는 경지[不退住]는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열 가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 마음은 견고하여 흔들리지를 않습니다. 즉, 부처님은 존재한다고 하든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 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진리가 있다고 하든 혹은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 니다. 보살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의 행(行)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 습니다.

보살의 행이 미혹을 초월한다고 하든 초월하지 않는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 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과거의 부처님과 미래의 부처님과 현재의 부처님이 각각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 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최고의 깨달음을 여신 부처님의 지혜가 다함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가 동일한 모습이라고 하든 동일한 모습이 아니라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 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하나[一]는 많은 것[多]이며, 많은 것[多]은 하나[一]이며, 가르침에 따라서 의미를 알고, 의미에 의하여 가르침을 알며, 비존재(非存在)는 존재이며 존재는 비존재이며, 모습을 갖지 않는 것이 모습이며, 모습이 모습을 갖지 않는 것이며, 본성이 아닌 것이 본성이며, 본성이 본성이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사물에 있어서 방편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불법이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아니합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여덟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동진주(童眞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열 가지 사물에 있어서 마음을 안정할 수 있습니다. 즉 마음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청정 하게 되고, 뜻대로 생을 받으며, 중생의 마음과 바라는 것과 본성과 업을 알고, 세계의 생성과 소 멸을 알며, 초인적인 힘은 자유자재하여 장애를 받는 일이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알고, 관찰하고, 진동(震動)하며, 지속하고, 또 모든 부처님의 나라와 그 밖의 모든 세계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는 진리를 문답하고, 초인적인 힘에 의하여 온갖 모습을 나타내며, 무량한 음성을 이해하고 한 생각 안에 무수한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을 익 혀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여러 가지 방편에 의하여 모든 법(法)을 완성하여야 하기 때문입니 다. 만약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진리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 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아홉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법왕자주(法王子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열 가지 사물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생의 나라들, 모든 번뇌, 그리고 이별의 아쉬 움, 헤아릴 수 없는 진리, 방편, 모든 예의와 작법(作法), 모든 세계의 실정,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 흐름, 세간의 도리와 궁극의 진리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개의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법왕(法王)이 머무는 곳과 법왕의 작법, 법왕이 있는 곳에 안주하는 것, 법왕이 있는 곳에 절 묘히 들어가는 것, 법왕이 있는 곳을 분별하는 것, 법왕의 진리를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 법왕의 진리를 칭찬하는 것, 법왕이 완전하게 진리를 실현하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 법왕의 진리, 집착을 떠난 법왕의 진리 등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사물에 있어서 장애를 받지 않는 지 혜를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면 스스로 이를 이해하고 결코 타인을 의지해서 깨닫 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열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관정주(觀頂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열 가지 지혜를 완성합니다. 즉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진동하고, 비추며, 지속하고, 청정하게 맑히고 또한 그 세계에 들며, 또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마음과 행위와 감관의 작용을 알 고 온갖 방편에 의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의 실체는 알 수가 없습니다. 즉 그가 선정에 드는 것이나, 초인적인 힘이 자유 자재한 것이나, 그의 과거, 현재, 미래의 지혜와 모든 부처님의 모든 나라를 밝히는 지혜와, 그의 마음을 경계 등을 낱낱이 알 수가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은 열 가지 지혜를 익혀야 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지혜, 최고의 깨달음을 여는 부처님의 지혜, 진리의 세계는 장애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지혜, 진리의 세계는 무량무변이라고 하는 지혜, 모든 세계를 비추고 지속하며 충실 하게 하는 지혜, 모든 중생을 분별하는 지혜, 최고의 깨달음을 여는 무량무변한 부처님의 지혜 등 을 익혀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종류의 지혜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여야 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 지 않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시방의 무량한 부처님 나라는 온갖 모양으로 진동하고 하늘의 꽃 과 꽃다발과 하늘옷이 비오듯이 뿌려지고 하늘의 음악은 스스로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제 12장 범행품(梵行品)

이때 정념천자(正念天子)가 법혜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온 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물든 옷을 입고 출가하였으면, 어 떻게 하여야 청정한 범행(梵行)을 실천하게 되며 보살의 지위로부터 위없는 보리의 도에 이르게 되 는 것입니까." 법혜보살이 정념천자에게 답하였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범행을 닦을 때에는 마땅히 열 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고 뜻을 내어 관찰 하여야 하나니, 이른바 몸과 몸의 업[身業]과 말과 말의 업[語業]과 생각으로 갖는 업[意業]과, 부 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승단과 계율입니다. 그러므로 마당히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 합니다.

첫째, 만일 몸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선하지 않은 것이며, 진실하지 않으며, 탁한 것이며, 냄새나 는 것이며, 부정한 것이며, 싫은 것이며, 어기는 것이며, 잡되고 물든 것이며, 송장이며 벌레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둘째, 만일 몸의 업[身業]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가는 것, 머무는 것, 앉는 것, 눕는 것, 왼쪽 으로 돌아보는 것, 오른쪽으로 돌아보는 것, 구부리는 것, 펴는 것, 숙이는 것, 우러르는 것이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셋째, 만일 말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음성이며, 말하는 것이며, 혀의 움직임이며, 이와 입술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넷째, 만일 말의 업[語業]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문안(問安)하고, 약설(略說)하고, 광설(廣說) 하고, 비유로 말하고, 직설(直說)하고, 칭찬하고, 헐뜯고, 방편으로 말하고, 세속따라 말하고, 분 명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다섯째, 만일 뜻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깨달음이며, 관찰이며, 분별이며, 기억함이며, 생각함 이며, 요술이며, 꿈이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여섯째, 만일 뜻의 업[意業]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추위이며, 더위이며, 주림이며, 목마름이 며, 괴로움이며, 즐거움이며, 근심이며, 기쁨이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일곱째, 만일 부처가 범행이라면 색온(色蘊)이 범행인가, 수온(受蘊)이 범행인가, 상온(想蘊)이 범행인가, 행온(行蘊)이 범행인가, 식온(識蘊)이 범행인가, 많은 것이 범행인가, 팔십종호(八十鍾 好)와 삼십이상(三十二相)이 범행인가, 신통이 범행인가, 과보가 범행인가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여덟째, 만일 부처님의 법이 범행이라면 적멸이 범행인가, 열반이 범행인가, 생기지 않음이 범행 인가, 일어나지 않음이 범행인가, 말할 수 없음이 범행인가, 분별 없음이 범행인가, 행할 바 없음 이 범행인가, 순종치 않음이 범행인가, 얻을 바 없음이 범행인가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아홉째, 만일 승(僧)이 범행이라면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 합니다. 예류과(預流果), 일래과(一來 果), 아라한과(阿羅漢果)의 수행이 범행인가, 또 세 가지 지혜[三明]와 여섯 가지 초인적인 능력 [六神通]을 체득함이 범행인가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열째, 만일 계율이 범행이라면 계단(戒壇)이 계율인가, 청정한 계율이 범행인가, 계사(戒師)가 주는 계가 범행인가, 머리 깍은 것이 범행인가, 가사 입는 것이 범행인가, 걸식함이 범행인가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이상과 같이 보살은 열 가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과거는 이미 멸하였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못하였으며, 현재는 고요하며 업을 짓는 주체도 없고 과보를 받는 주체도 없으며 이 세상은 이동하지 않고 저 세상은 바뀌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가운데 어느 법이 범행인가. 범행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누가 행하는 것이고, 자체는 무엇이 며, 누구로 말미암아 지어졌는가. 이것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색인지 색이 아닌지, 감각(受) 인지 감각이 아닌지, 상(想)인지 상이 아닌지, 행(行)인지 행이 아닌지, 식(識)인지 식이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렇게 관찰하면 범행이란 것은 얻을 수 없는 까닭이며, 삼세의 법이 다 공적한 까닭이며, 뜻에 집착이 없는 까닭이며, 마음에 장애가 없는 까닭이며, 행할 바가 둘이 아닌 까닭이며, 방편이 자재 한 까닭이며, 모양 없는 법을 받아들이는 까닭이며, 모양 없는 법을 관찰하는 까닭이며, 부처님 법 이 평등함을 아는 까닭이며, 온갖 부처님 법을 갖춘 까닭에 이것을 보살의 청정한 범행이라고 이름 합니다.

다시 열 가지 법을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열 가지 법입니까.
이른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는 지혜, 지난 세상, 지금 세상, 오는 세상의 업과 과보를 아는 지혜, 모든 선정, 해탈, 삼매를 아는 지혜, 모든 근기의 뛰어남과 저열함을 아는 지혜, 가지가지 이해를 아는 지혜, 가지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 온갖 곳에 이르는 길을 아는 지혜, 천안통(天眼通) 의 걸림 없는 지혜, 숙명통(宿命通)의 걸림 없는 지혜, 악업으로 인해 남은 습관을 영원히 끊는 지 혜이니 여래의 열 가지 힘을 낱낱이 관찰하며 낱낱이 힘써 한량없는 뜻이 있는 것을 마땅히 물어야 합니다.

들은 뒤에는 크게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니 중생을 관찰하여 버리지 아니하며, 모든 법을 생각하 여 쉬지 아니하며, 위없는 업을 행하고도 과보를 구하지 아니하며, 경계가 환상과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변화와 같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보살들이 이렇게 관행(觀行)함으로 더불어 응하면 모든 법에 두 가지 이해를 내지 아니하 며, 온갖 부처님의 법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며, 처음 발심할 때에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얻을 것이며, 온갖 법이 곧 마음의 성품임을 알 것이며,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남에게 의지하여 깨 닫지 아니할 것입니다."

 

제 13장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그때 제석천이 법혜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초발심의 보살은 얼마만한 공덕을 완성하고 있습니까." 법혜보살이 대답하였다.

"불자여, 그 도리는 심원하여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렵고 또한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설하기도 어 렵고 판별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그대에게 설하고자 합니다. 불자여, 예를 들면 어던 사람이 동방의 무수한 세계의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고 그 뒤에 오계 (五戒)를 행한다고 합시다. 또 동방의 세계에서와 같이 사방팔방, 시방의 세계의 중생에게도 그와 같이 한다고 합시다. 이렇게 한다면 이 사람의 공덕은 많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제석천이 말했다.

"불자여, 모든 여래 이외에는 이 사람의 공덕과 비교될만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법혜보살이 제석천을 향하여 말했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이 아무리 많아도 초발심을 한 보살의 공덕에는 비할 수 없습니다. 비유 한다면,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백천분의 일, 억분, 백억분, 천억분 내지 헤아릴 수 없으며, 따 라서 그 공덕은 다함이 없고, 설할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불자여, 또 어느 사람이 시방의 무수한 세계의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고 그 뒤에 십선(十善)을 행한다고 합시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중생에게 혜택을 베풀고자 하는 자비심으로 물질을 초월한 경계에 안정하도록 하며, 한 번 다시 태어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경계[一來]에 이르도록 하고, 미 혹의 세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경계[不還]와 아라한(阿羅漢)의 경계에 이르도록 하며, 최후에 는 연각(緣覺)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고 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이 사람의 공덕은 많다고 생각합니 까."

제석천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 이외에는 이 사람의 공덕을 낱낱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법혜보살은 제석천을 향하여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에 비한다면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에도 지나지 않습니다. 초발심을 한 보살의 공덕은 헤아릴 수도 없으며 설할 수 없을 만 큼 많습니다.

불자여,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은 시방세계의 무수한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무수한 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오계(五戒)와 십선(十善), 사선(四嬋),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 예류(預流), 일래(一來), 불환(不還), 아라한(阿羅漢), 연각(緣覺) 등의 길을 행하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모든 보살이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菩提心]을 일으켰던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모든 세계는 스스로 청정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모든 중생을 구하 고 깨달음을 열고자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의 번뇌와 그 오염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 마 음의 움직임을 알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여기에서 죽고 저기에서 태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또 일체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평등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또 다음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한 순간에 무량한 세계를 통과할 수 있을 만한 신통력을 가지고 그에 필적할 만한 긴 시간 동안 동방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여도 세계의 끝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또 두 번째 사람이 앞 사람의 뒤를 이어서 다시 긴 시간동안 동방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여도 역 시 세계의 끝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제 삼, 제 사, 내지 제 십의 사람이 동방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여도 마찬가지로 그 끝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또 이 동방의 경우와 같이 시방세계에 있어서도 모두 합쳐서 백 명의 사람이 저마다의 방향을 향 하여 나아갈 때, 설사 시방의 세계의 끝에 이를 수가 있다고 가정한다 하여도 초발심을 한 보살의 공덕의 양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발심을 한 보살은 한정된 세계의 중생만을 위하여 보리심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 문입니다. 시방의 무변한 세계의 실정을 알고, 그 세계의 일체의 중생을 구하고자 생각하기 때문에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입니다.

또 작은 세계는 곧 커다란 세계라고 알고, 커다란 세계는 곧 작은 세계임을 알며, 넓은 세계는 곧 좁은 세계임을 알고, 좁은 세계는 곧 넓은 세계임을 알며, 하나의 세계는 곧 무량한 세계임을 알고, 무량한 세계는 곧 하나의 세계임을 알며, 무량한 세계는 곧 하나의 세계에 드는 것임을 알 고, 하나의 세계는 곧 무량한 세계에 드는 것임을 압니다.

또 더럽혀진 세계는 곧 깨끗한 세계임을 알고, 깨끗한 세계는 곧 더럽혀진 세계임을 알며, 하나 의 털구멍 속에 일체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일체의 세계 속에서 일체의 털구멍의 성질을 알며, 하 나의 세계로부터 일체의 세계가 생하는 것을 알고, 일체의 세계는 흡사 허공과 같음을 압니다. 또 일념 사이에 일체의 세계를 낱낱이 알고자 하기 때문에 보살은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향하여 마 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블자여, 또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 수 있습니다.
신통력을 가지고는 한 순간에 무량한 세계에 사는 모든 중생의 소망을 알 수 있지만, 사람이 아 득한 시간에 걸쳐 제 아무리 능력을 다해도 동방의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의 소망을 알 수는 없다 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 이, 제 삼, 내지 제 십의 사람이 그 뒤를 이어서 시간을 다해도 동방세계에 사는 중생의 소망을 낱낱이 알 수는 없습니다. 또 시방세계의 중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가령 시방의 무변한 세계에 사는 중생의 소망을 낱낱이 알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초발심 을 한 보살의 공덕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발심의 보살은 한정된 세계의 중생의 소망을 알기 위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킨 것은 일체 중생의 다함이 없는 소망의 대해(大海)를 알고자 하고, 중생의 욕망은 하나의 욕망이며, 하나의 욕망은 일체의 욕망임을 알고자 하며, 또 착 함[善]과 착하지 않음[不善]에 대한 욕망, 세간 혹은 출세간(出世間}에 대한 욕망, 커다란 지혜의 욕망, 청정한 욕망, 장애가 없는 지혜의 욕망, 장애를 받지 않는 지혜를 갖춘 욕망 등을 낱낱이 알 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혹은 또 중생의 감각기관, 희망, 방편, 마음, 움직임, 모든 업, 번뇌 등을 낱낱이 알고자 하는 것을 비유로 들 수 있습니다.

불자여! 혹은 또 다음과 같은 비유도 들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한 찰나에 동방의 무변한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부처님과 그 일체의 중생을 공경하고 찬탄, 예배하며 존경하고, 또 온갖 공양을 다하고 장엄할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지고 아득 한 오랜 시간을 다한다고 하면, 이같이 하여 동방세계와 마찬가지로 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일 체 중생을 공양할 수 있다고 하면, 불자여, 어떻겠습니까, 이 사람의 공덕은 많다고 생각합니까." 제석천은 이에 대답하였다.

"오직 부처님만이 이 사람의 공덕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법혜보살은 말했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에 비한다면,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에도 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따라서 설할 수도 없 습니다.초발심을 발한 보살이 보리심을 내면, 무한한 과거로부터 활동해 온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알 수 가 있으며, 무한한 미래를 향하여 활동하고자 하는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믿을 수가 있으며, 현재 의 모든 부처님이 설하는 지혜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이 보살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믿고 가르침을 받으며 행하고 체득하여 모든 부처님 들의 공덕과 같게 됩니다. 왜냐하면, 초발심을 발한 보살이 최고의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다음의 이유에 근 거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보살은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본질을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커다란 자비심을 가지고 모 든 세계의 중생을 구하고자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모든 중생의 오염이나 청정함이 생기는 실정을 알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중생의 마음의 움직임이나 남은 업으로 인한 번뇌를 낱낱이 알기 때문이며, 또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을 알고자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삼세의 부처님께서 가지신 힘을 이 어받아 그 한없는 평등의 지혜를 얻고자 하기 때문에 이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 킨 것입니다.

이 초발심을 발한 보살이야말로 실은 부처님인 것입니다. 이 보살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 와 마찬가지로 여래의 한마음[一心]과 한량없는 마음[無量心]과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지혜 를 얻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세계를 비추고 모든 악도의 고통을 잠재우며, 모든 세계에서 성불하는 것을 실천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의 기쁨을 얻게 하고, 그 깊은 진리의 세계를 깨닫게 합니다. 또 모든 부처님의 본성을 지키며,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을 얻고 있습니다.

초발심을 발한 보살은 항상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모든 보살 연각(緣覺)과 성문(聲 聞) 내지 그 법(法), 세간(世間), 출세간(出世間)의 법, 중생의 법 등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깨달 음을 구하며 그 지혜는 장애를 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신통력과 초발심을 발한 보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힘에 의하여 시방의 끝없는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꽃과 하늘의 향기와 하늘의 꽃다발과 하 늘의 보배가 비처럼 뿌려져 미묘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때 끝없는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은 낱낱이 그 몸을 법혜보살의 앞에 나타내시었다. 그리고 법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불자여, 그대는 능히 초발심의 공덕을 설하였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 님도 또한 낱낱이 초발심의 공덕을 설하고 있다. 그대가 초발심 보살의 공덕을 설하였을 때, 시방 의 중생은 모두 초발심 공덕을 얻고 무상한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킨다. 우리는 이제 중생들에 게 약속하나니 그들은 미래세에 저마다 동시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니라. 우리들은 미래의 모든 보 살들을 위하여 이 초발심의 법을 지키고 전하여야 한다."

법혜보살이 이와 같이 사바세계의 수미산 정상(頂上)에서 초발심의 법을 설하고 중생을 교화한 것과 같이, 시방의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모든 세계 안에서도 초발심의 법을 설하고 중 생을 교화하였다. 그리고 이 법을 설하는 자를 각각 법혜라고 이름하였다.

그것은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며,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에 의하며, 지혜의 광명이 남김없이 비추는 것에 의하며, 제일의(第一義)를 깨닫는 것에 의하며, 모든 보살은 기쁨에 넘쳐 있음에 의하 며,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 것에 의하며, 모든 부처님의 평등함을 아는 것에 의하며, 또 법 계는 하나이며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것에 의하기 때문이다."

그때 법혜보살은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서, 중생의 미혹과 오염을 제거하고, 넓은 해탈을 얻게 하고자, 또 스스로의 깊고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다음과 같 이 게송을 읊었다.

"초발심의 보살은 일체 중생 안에서 항상 분노를 떠나 대자비를 일으키며, 남을 이롭게 하는 마 음을 기릅니다. 그 자비의 빛은 시방세계를 비추어 중생을 위한 의지처가 되도록 하며, 모든 부처 님은 이 보살을 지키고자 염원합니다.

그 어느 것도 이 보살의 신심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흡사 금강과 같이 견고하며, 항상 모든 여래의 밑에서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합니다. 보살은 부처님의 지혜를 완성하여 그 뜻에 막힘이 없습니다. 또 진실한 세계를 분명하게 깨달아 마음은 적멸하고 허망을 떠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은 고요하고 평안하며 지혜의 힘은 청 정합니다.

보살은 미래의 끝까지 다하여도 중생에게 힘을 바쳐 드디어는 해탈을 얻게 하고자 생각하며 다함 없는 생사 안에서 어떠한 지옥의 괴로움을 받아도 중생을 위하여 힘을 다합니다. 하나의 털구멍 안 에서 시방의 세계를 보니, 그 세계는 미묘하게 장엄한 모습을 띠고 있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 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만약 시방세계 일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받들고자 하며, 또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공덕을 얻고자 원하며, 혹은 또 일체 중생의 끊임없는 생사의 괴로움을 없애고자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서 원을 세워서 곧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제 14장 명법품(明法品)

그때 정진혜(精進慧)보살이 법혜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초발심을 발한 보살은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얻고, 그 모습은 위엄에 가 득 차 있으며, 애욕의 밧줄에서 벗어나 모든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있으며, 그 뜻 하는 바는 위 없는 깨달음의 세계에 대한 완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보살은 어떠한 법을 행하여야 그 공덕은 보다 뛰어나고 모든 여래는 낱낱이 기뻐하며 그리하여 이 보살의 청정한 대행(大行)과 대원(大願)이 완성되겠습니까. 바라옵나니 불자여, 우리들을 위하여 이 불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기쁘게 듣고자 합니다."

법혜보살은 정진혜보살을 향해 말했다.
"불자여, 그대는 이 문제를 잘 물었습니다. 이 불법은 중생을 안락케 하고 중생에게 커다란 이 익을 주는 매우 깊은 보살의 대행입니다. 불자여, 그대는 진실한 지혜 안에 쉬고 있으며, 전심전 력으로 대정진(大精進)을 행함으로써 드디어는 한 번 얻은 공덕을 다시는 잃지 않는 경지에 도달 하고, 속계(俗界)를 뛰어넘어 있습니다. 그대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은 참으로 여래의 세계입니다. 불자여, 잘 듣고 잘 생각하기 바랍니다. 나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그대를 위하여 설하고 자 합니다.

불자여, 이 보살은 이미 초발심의 공덕을 얻고 있으므로 참으로 무지(無知)의 어두움을 떠나고 온갖 게으른 마음을 떠나야 합니다.
보살에게는 열 가지 법이 있어서 게으른 마음을 제거할 수가 있습니다.
즉 마음을 맑게 하고 계율을 지니며 어리석음을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 는 마음을 밝게 하고, 거짓 마음을 버리고, 중생을 연민하며 선행에 전진하여 얻은 공덕을 다시 는 잃지 않는 경지를 얻고, 항상 적연(寂然)하기를 원하여 재가나 출가의 모든 범부의 어리석음 에서 떠나고, 세속의 즐거움을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한결같이 뛰어난 수행을 닦아 소승(小乘) 의 가르침을 버리고, 보살의 길을 구하며, 항상 공덕을 잊지 않고 더럽히는 일이 없으며, 스스로 자기의 본분을 훌륭하게 깨닫습니다.

이것이 게으른 마음을 없애는 열 가지 방법입니다. 불자여, 보살은 더욱 나아가 다음의 열 가지 청정한 법을 행합니다.
즉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수행하고, 뜻하는 것이 지혜에 맞게 하며, 게으른 마음을 버리고서 깊은 불법 안에서 쉬며, 항상 불법의 완성을 원하고 구하여 게으르지 아니하며, 마음에 들은 그 대로 진실의 세계를 보고 훌륭한 지혜를 낳으며,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세계에 들고 마음은 항상 적연하여 산란하지 않으며, 설사 좋고 나쁜 일을 들어도 마치 대지와 같이 굳은 마음으로 동요하 지 않고, 상, 중, 하의 중생을 보아도 모두가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스승과 선지식, 출가자, 보살들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한 생각 한 생각에 모든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청정한 법입니다.

불자여, 보살은 이와 같이 노력하여 생각 생각마다 지혜를 갖추고 방편을 버리지 않으며, 마음 에 의지하는 바를 구하지 않고 다툼이 없는 세계에 들며 한량없는 불법을 낱낱이 분별하고 그리 하여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기쁘게 합니다.

불자여, 보살은 열 가지 법을 행하여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즐겁게 합니다.
즉 자기의 행하는 바에 힘써서 결코 물러남이 없고,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으며, 세속의 이익 을 구하지 않고, 일체의 불법을 수행하여 닦지만 흡사 허공과 같이 집착하지 않고, 방편의 지혜 에 의하여 모든 것을 관찰하고, 법계와 일체가 되며, 일체를 분별하면서 생각에 의지함을 구하지 않고, 대원(大願)을 일으키고, 청정한 지혜의 빛을 완성하여 중생의 모든 이해 득실을 알아서 실 천하는 불법은 낱낱이 청정합니다. 이것이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열 가지 법입니다. 불자여, 다음으로 보살은 열 가지 법을 실행하여 재빠르게 보살의 모든 경지를 완성합니다.

즉 마음은 항상 모든 공덕을 행하고자 원하며, 피안에 이르는 모든 길을 닦고, 지혜는 밝아서 헤매이지 않으며, 항상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항상 노력하여 물러남이 없으며, 부처님의 마음을 이어 받아서 모든 불법을 지니고, 모든 선을 행하여 마음의 근심이 없으며, 지혜의 빛은 일체의 사물을 남김없이 비추고, 모든 경지의 불법에 쉬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정법(正法)에 동화합 니다. 이것이 보살의 모든 경지를 완성하는 열 가지 법입니다.

불자여, 이 보살은 저마다의 경지에 안주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하여 얻은 깊은 지혜에 따르고, 스스로의 숙업(宿業), 경계(境界), 지위(地位)에 따르고, 일체의 뛰어난 불법을 낱낱이 판별하면서도 그 모든 사물에는 집착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은 마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도자가 이와 같이 명확하게 관찰 하면 모든 보살의 경지를 나의 몸에 갖출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보살은 항상 마음을 '나는 어서 빨리 모든 보살의 경지를 완성하여야 되겠다. 내가 그 경지에 있어서 가르침 그대로를 알 때, 무량한 공덕을 얻을 것이다. 무량한 공덕을 얻은 다음에는 차츰 부처님의 경계에 나아가리라. 부처님의 경계에 이르러서는 부처님의 하고자 하는 임무를 다하리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항상 노력하여 불법을 행하며 방편을 버리지 않고 마음에 근심이 없으며 보살의 경지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불자여, 또한 보살은 열 가지 법을 행하여 보살의 행을 맑게 합니다.
즉 일체를 버리고 중생이 바라는 바를 채워 주며, 계율을 지니고 어기는 일이 없으며, 인내가 다하는 일이 없으며, 방편을 써서 물러서는 일이 없으며, 무지를 떠나서 모든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삼매에 들어 마음이 혼란하지 않고, 모든 사물을 분명하게 하며, 모든 행을 완성하고 공덕 을 존경하는 마음은 흡사 산왕(山王)과 같고, 일체 중생을 위하여 스스로 청량한 연못이 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이 법에 동화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행을 맑게 하는 열 가지 방법입니다.
불자여, 보살에게는 열 가지 맑은 서원이 있습니다.
즉 중생의 덕을 완성하여 마음에 괴로움이 없기를 원하며, 선행을 오래도록 행하여 부처님의 나라를 청정하게 하는 것을 원하며, 모든 여래를 공경, 공양하기를 원하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정법(正法)을 지키기를 원하며, 여러 가지 지혜나 방편에 의하여 중생이 남김없이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며, 보살의 상대적인 차별을 초월한 절대 평등한 경지[不二法門]와 부처 님의 한없는 진리에 들어 모든 사물을 밝게 알고자 원하며, 부처님을 만나 보고자 원하는 자로 하여금 남김없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다함없는 미래의 시간을 한 순간과 같이 느끼기를 원하 며, 보현보살의 서원을 스스로 몸에 익히고자 원하며, 모든 종류의 지혜를 밝히고자 원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청정한 서원입니다.

불자여, 보살은 보다 나아가서 열 가지 법을 수행하여 모든 서원을 다합니다. 그 열 가지 법이란 마음의 피곤이나 염리(厭離)를 느끼지 않는 것이며, 마음에 근심도 외로움 도 없으며, 모든 보살은 시방의 부처님 나라에 낱낱이 왕생하고자 원하고, 미래로 나아가 일체 중생의 덕을 완성하고자 생각하며,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 안에 안주하면서도 길다고 하는 느 낌이 없으며, 어떠한 괴로움을 당하여도 괴로움을 기억하지 않고, 어떠한 즐거움을 당하여도 마 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비교할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이것이 모든 서원을 실천하는 보살의 열 가지 방법입니다.
불자여, 보살은 어떻게 하면 그 구하고자 하는 중생을 교화할 수 있겠습니까.
이 보살은 중생에게 필요 적절한 방편을 알고 있으며, 중생의 숙업의 인연을 알고 또 중생이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에 따라서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을 가르 치는 것입니다.

즉, 탐욕이 많은 자에게는 육신의 부정(不淨)을 생각하게 하고, 성을 잘 내는 사람에게는 자비 를 생각하도록 가르치며,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하여 있음을 알게 하고, 모든 것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일체는 공(空)임을 가르치며, 게으른 사람에게는 노력할 것을 권하고 아 만(我慢)이 강한 사람에게는 일체는 평등함을 알게 하고, 자기의 마음을 굽혀서 남에게 아첨하는 사람에게는 보살의 마음은 정연하여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온갖 번뇌에 대해서 무량한 가르침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분별의 지혜를 잘 활용하여 가르침의 의미를 훌륭하게 설하고 전하여 주며, 사물의 질서를 문란하게 함이 없으 며, 모든 사물은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이면서도 진리의 세계에 있어서는 소멸함이 없음을 가르치 며, 중생의 의혹을 없애고 모든 진리를 기쁘게 하며, 그 능력에 따라서 모든 공덕을 가르치며, 드디어는 여래의 커다란 바다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그 마음이 정연하여 혼란함이 없고 다음과 같은 열 가 지 수행의 완성[十波羅蜜]을 갖추고 있습니다.

첫째, 일체 중생을 위하여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것을 베풀면서도 여기에 집착하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보시의 완성[布施波羅蜜]입니다.

둘째, 모든 계율을 지니면서도 계율을 지녔다고 하는 의식이 없으므로 여기에 집착하지 아니합 니다. 이것이 계율의 완성[持戒波羅蜜]입니다.

셋째, 어떠한 고통에도 인내하며 좋고 나쁜 일을 들어도 평등하고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 마치 모든 것을 번성하게 하는 대지와 같습니다. 이것이 인욕의 완성[認辱波羅蜜]입니다. 넷째, 항상 노력,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결코 물러남이 없습니 다. 이것이 정진의 완성[精進波羅蜜]입니다.

다섯째, 어떠한 욕망에도 집착함이 없고 차례로 선정(禪定)에 들어 모든 번뇌를 끊고, 드디어 무량한 삼매에 나아가 커다란 신통을 갖추고, 더욱 초월하여 하나의 삼매 안에서 무량한 삼매에 들고, 모든 삼매의 경지를 알아서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선의 완성 [禪定波羅蜜]입니다.

여섯째, 모든 부처님 밑에서 가르침을 듣고 잘 받들며, 모든 선지식에게 친근하고 공경하며, 마음에 게으름이 없으며, 모든 사물을 바르게 관찰하여 진실한 선정에 들며, 모든 편견을 떠나서 진리의 바다를 건너며, 아무런 바람도 없이 봉사[無功用]하는 여래의 길을 알아 모든 지혜를 갖 추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반야의 완성[般若波羅蜜]입니다.

일곱째, 세간의 여러 가지 모습을 가르쳐 중생을 교화하며, 그 마음가짐에 따라서 몸을 나타내 고, 어떠한 작용에도 집착함이 없어, 혹은 범부의 몸이 되고 혹은 성인의 몸이 되며, 혹은 생사 를 나타내고 혹은 열반을 나타내며, 모든 경지에 들어가 중생을 눈뜨게 합니다. 이것이 방편의 완성[方便波羅蜜]입니다.

여덟째, 모든 중생을 완성하게 하고, 모든 세계를 장엄하며, 모든 여래를 공양하고, 모든 사물 의 진실을 깨달으며 수행하여 법계(法界)의 지혜를 갖추고, 다른 부처님 나라를 알리며 모든 부 처님의 지혜를 체득합니다. 이것이 서원의 완성[願波羅蜜]입니다.

아홉째,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에 의하여 모든 번뇌를 떠나고, 진리에 대한 믿음에 의하여 어떤 고난에도 물러서지 아니하며, 남의 괴로움을 제거해 주는 커다란 연민에 의하여 피로를 모르며,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깊은 마음에 의하여 행하는 바가 모두 평등하고, 도리를 판별하는 능력에 의하여 모든 중생을 기쁘게 하며, 초인적인 힘으로 모든 중생을 지킵니다. 이것이 힘의 완성[力 波羅蜜]입니다.

열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이 강한 사람들을 알고, 한 생각 동안에 중생의 마음이 움직이 는 것을 알며, 모든 사물의 진실을 알고 모든 부처님의 깊은 지혜력에 도달하여 일체의 도리를 남김없이 압니다. 이것이 지혜의 완성[智波羅蜜]입니다.

불자여,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수행을 맑게 완성하며 중생의 취향에 따라서 가르침을 설합니 다.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탐욕을 떠나라고 가르치고, 성내는 사람에게는 평등한 관찰을 가르 치고 소승(小乘)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적정(寂靜)의 행을 가르치며, 대승(大乘)을 원하는 사람 에게는 불도의 장엄(莊嚴)을 가르칩니다.

그 옛날 보살도를 닦으시던 여래께서 처음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일으켰을 때, 많은 중생 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중생이 앓는 마음의 병을 알고 그 병에 따라서 중생을 가르치며 드디어 마음의 눈을 뜨 게 하리라.'

보살은 이와 같이 지혜를 갖추어 무량한 중생을 구하고 있습니다.
불자여, 또 보살은 삼보(三寶)를 훌륭하게 일으키고 끊임이 없도록 하고자 합니다.
즉 보살은 중생을 교화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이로 인하여 부처님[佛寶] 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또 보살은 항상 뛰어난 법(法)을 열어서 보여 줍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 의 가르침[法寶]은 끊이지 않습니다. 또 보살은 항상 규법과 법도를 지키며 가르침을 몸에 지니 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봉행하는 승단[僧寶]은 끊이는 일이 없습니 다.

또 보살은 모든 대원(大願)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인연의 도리를 판별하고 이것을 설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 침은 끊이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여섯 가지의 방편으로 화합하는 길[六和敬]을 행하고 있습니 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봉행하는 승단은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또 보살은 부처님이 될 씨앗[種子]을 중생의 밭에 뿌리고 깨달음의 싹을 트게 합니다. 이 때문 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정법(正法)을 지킵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끊이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대중을 다스리고 싫어하 지를 않습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을 신봉하고 그 가르침을 봉행하는 승단은 끊어지는 일이 없습 니다.

불자여, 보살은 지혜의 등불에 의하여 무지(無知)의 어두움을 없애고 자비의 힘에 의하여 모든 악마를 격퇴하며, 금강정(金剛定)에 들어서 모든 마음의 때와 번뇌를 없애며, 청정한 지혜를 완 성하는 것에 의하여 모든 악도의 재난을 떠나며, 진리를 가르쳐 무량무변한 중생을 눈뜨게 합니 다.

불자여, 보살은 이와 같이 무량한 법을 수행하여 차례로 몸에 익히고 드디어는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무량한 나라에서 정법을 지키고, 큰 스승이 되어 여래의 가르침을 받들며, 대중 안에서 깊은 가르침을 설법하여 전하며, 용모는 단정하고 그 음성은 뛰어나 한 마디 말을 할 때마다 많은 중 생을 기쁘게 하며, 적절하게 교화하고 마음의 눈을 크게 하여 지혜의 세계에 들어가게 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많은 방편에 의하여 모든 중생을 위한 진리의 보물 창고를 엽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에 아직 한 번도 권태를 느낀 일이 없고 대중 속에 있으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누구도 보살의 지혜를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보살은 모든 사물의 실상을 차례로 식별하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는 대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또 즐겁게 하며, 사자(獅子)의 자리에서는 뛰어난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위하여 깊은 진리를 설합니다."



제 15장 불승야마천궁자재품(佛昇夜摩天宮自在品)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제석천을 떠나서 야마천(夜摩天)의 보장엄전(寶莊嚴殿)으로 향하셨 다.
그때 야마천왕은 멀리에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연화장(蓮華藏) 사자좌를 만들어 많은 보배로 장식하고 도 많은 보배 옷을 그 위에 깔았다. 또 많은 천신들은 그 앞에 나란히 섰고 많은 범천(梵天)들은 연화장 사자좌를 둘러쌌으며 또 많은 보살들은 그 앞에 나와 찬탄하였다. 무수한 광명이 빛나고 무수한 음악은 자연히 정법을 찬 탄하였다.

그때 야마천왕은 연화장 사자좌를 장엄하고서 합장 예배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이 궁전에 머물러 주옵소서."
부처님은 그 간청을 받아들여 궁전으로 올라갔다.
그때 연주되고 있던 무량한 음악은 정연하여지고 고요해졌다.
야마천왕은 과거 여러 부처님 밑에서 수행했던 불법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명칭여래(名稱如來)는 그 가르침이 시방에 울려퍼지기도 전에 이 궁전에 들어오셨습니다. 때 문에 여기는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보왕여래(寶王如來)는 세간의 등불로서 전에 이 궁전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때문에 여기는 보 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희왕여래(喜王如來)는 지혜가 헤아릴 수 없으며 전에 이 궁전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때문에 이 곳은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무사여래(無師如來)는 세간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전 에 이 궁전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고행여래(苦行如來)는 세간에 이익을 주며 전에 이 궁전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보다 더 축복되고 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연화장 사자좌 위에 올라 결가부좌하셨다. 이어서 궁전이 갑자기 넓어지고 또 야마천 가득히 넓혀졌다.



제 16장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設偈品)

그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시방의 여러 대보살들과 한 분 한 분의 모든 보살은 저마다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만큼 많은 보살들과 함께 십만 세계의 티끌 수만큼 많은 국토 밖으로부터 와서 모 였다.
그들의 이름은 공덕림(功德林)보살, 혜림(慧林)보살, 승림(勝林)보살, 무외림(無畏林)보살, 참 괴림( 愧林)보살, 정진림(精進林)보살, 역림(力林)보살, 행림(行林)보살, 각림(覺林)보살, 지림 (智林)보살 들이었다.

그 보살들이 떠나온 세계는 친혜(親慧)세계, 당혜(幢慧)세계, 보혜(寶慧)세계, 승혜(勝慧)세 계, 등혜(燈慧)세계, 금강혜(金剛慧)세계, 안락혜(安樂慧), 일혜(日慧)세계, 정혜(淨慧)세계, 범 혜(梵慧)세계 들이었다.

이 보살들은 저마다 세계의 부처님 앞에서 청정함을 닦고 있었다. 이 여러 보살들은 부처님 계 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떠나 온 방위(方位)를 따라 제각기 연꽃의 사자좌를 마 련하여 그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또 이 세계의 야마천상(夜摩天上)에서 보살들이 모인 것처럼 일체의 세계에서도 그러하였으며 그 보살들의 세계와 여래의 이름도 모두 같았다. 그때 세존께서 두 발들으로 백천억의 묘한 광명을 놓아 모든 세계를